삶이 이해가 되지 않고 답답할 때
♥욥기 13:1-12♥
1.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2.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3.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4.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
5. 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6.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 보라
7. 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를 말하려느냐 그를 위하여 속임을 말하려느냐
8.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따르려느냐 그를 위하여 변론하려느냐
9.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10. 만일 너희가 몰래 낯을 따를진대 그가 반드시 책망하시리니
11. 그의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의 두려움이 너희 위에 임하지 않겠느냐
12. 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가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삶이 이해가 되지 않고 답답할 때
본문은 욥이 자신의 고난의 이유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어 하나님과 변론하겠다고 언급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인과응보의 신앙과 현세적 상과 벌의 논리에 집착해 있었기 때문에 욥과 대화가 되지 못했습니다.
3.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여기서 변론이라는 말은 '야카흐'로서 '결정하다', '판단하다', '판결하다', '변론하다' 등의 의미가 있는 단어 입니다. NIV성경에서는 to argue my case with인데, 이 표현은 법정에서 우리의 문제를 논의해 보자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욥은 자신의 고난을 이해할 수 없어서 천상의 법정에서 하나님과 직접 변론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설명이 되지 않을 때, 억울함이 있을 때 어디를 가서 호소를 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하도 억울해서 한이 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 억울함을 풀지 못해 화병을 얻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 1: 18)고 친히 말씀해 주십니다.
사 43: 26,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을 만날 때,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변론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문제를 만날 때, 그저 답답함 속에 갇혀 무속인들을 찾아가거나 아니면 집안에 갇혀 삽니다. 아니면 사람들을 만나 하소연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소연 할 것이 아니라 혹은 주저앉아 세상을 원망하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욥처럼 적극적으로 당신께 나와 호소라라고 하십니다.
데일리 말씀을 통해 나의 답답한 상황을 들어 주실 하나님이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세상에서도 내 말만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감사한데,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힘든일, 어려운 일을 언제든지 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어떤 위험, 박해, 고난, 억울함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나아가 변론할 수 있으니
삶이 당당해 짐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답답한 상황이라도 하나님께 나아가서 변론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욥의 심정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나의 영혼의 진정한 위로자와 치료자는 주님 한 분 뿐임을 고백합니다.
[기도제목]
나의 영혼의 진정한 위로자 되시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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